첫번째 포항 손님
첫 번째 포항 손님
2025년 7월 16일 천정수(千正秀) 목사가 우리 교회 수요일 예배에서 설교했다. 그는 강화도 앞바다 볼음도(乶音島)에서 목회하는 고향교회 후배다. 볼음도는 강화군 서도면(西島面)의 주문도(注文島), 아차도(阿次島), 말도(末島)와 함께 외포리(外浦里) 선착장에서 서북으로 1시간쯤 가면 나오는 낙도(落島)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풍랑을 피하느라 이 섬에서 15일을 지내는 동안 보름달을 보게 되어 만월도(滿月島)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여 보름달을 발음 그대로 표기하여 볼음도라고 했다. 乶은 한자화가 이루어져서 甫(보)에 乙(ㄹ) 붙여 ‘볼’자에만 사용되는 국자(國字)다. 1902년 3월에 설립된 볼음교회는 현재 이 섬의 모든 종교단체를 통틀어 유일하다. 1893년 5월 주문도에 진촌교회(現 서도중앙교회), 눌리교회(現 서도교회), 대변창교회가 세워지면서 확고한 신앙의 기반이 갖추게 되자 점차 주문도 주변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 중심에 윤정일이 있었다. 그는 서쪽의 볼음도와 그 ‘끗점’인 말도에까지 복음을 전파했다. 이때 그에게 전도받은 유봉래가 설립한 교회가 볼음교회다. 1909년경 복음의 지경이 넓어져 안말(內洞)에 기도처가 세워졌다. 그 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에 정식으로 담임자가 파송되었는데 교회가 설립된 지 52년 만의 일이다.
산업화로 인해 우리 사회는 경제가 성장하여 삶이 윤택해졌으나 저출산, 이농현상을 낳았다. 그 영향으로 농어촌 지역에는 인구 감소가 두드러졌다. 이런 현상은 서도면 지역의 섬들에도 예외가 아니었으나 볼음도는 비교적 심하지 않았다. 그 후 서도면에서는 볼음교회가 앞서고 있다. 행정구역상 볼음 1리에는 당아래, 큰말, 대다래, 샘말이 있고 2리에는 안말 뿐이다. 교회는 이 섬의 중심인 큰말 중앙에 우뚝 서 있다. 2002년 교회창립 100주년 기념하여 건축한 성전이 노후화되자 천정수 목사는 2012년 창립 110주년을 맞이하여 불편한 구조까지 바꾸는 개축공사를 시행했다. 그 덕에 아름답고 편리하게 탈바꿈한 성전은 이제 이 섬의 관광 코스가 되었다. 올해로 18년째 목양일념(牧羊一念)으로 목회하는 그의 성실함 덕분에 교회는 1백여 년이 넘게 변함없이 섬마을을 밝히는 복음의 등대로 우뚝 서 있다.
2025년 6월 갑작스럽게 내 목회 임지가 포항으로 바뀌어 지인들에게 알렸다. 그런데 가장 멀리 있는 그가 제일 먼저 포항 방문을 통보했다. 가까운 곳이라면 아무 때나 쉬 다녀올 수 있겠지만 먼 곳이라서 작심하지 않으면 볼 날이 요원할 것 같아서 차분한 그의 성격과는 달리 쇠뿔도 단김에 빼고 싶은 심정으로 달려와 기쁘게 만났다. 볼음도에서 포항까지의 거리는 어림잡아 500㎞, 뱃길까지 포함하여 쉬지 않고 달려와도 6시간, 휴게소에 머무는 시간을 포함하면 7시간이 넘는 대장정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북녘땅이 눈앞에 가까이 보이는 서북단에서 동남단 포항까지 그는 국토를 종횡단 순례한 셈이다. 포항 방문이 생겨서 겸사겸사 온 것이 아니라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게 된 선배를 굳이 만나려고 한숨에 달려왔으니 그의 방문에는 첫 번째라는 의미를 빼고도 그 자체만으로 큰 감동이었다. 그동안 육지와 단절된 섬마을 주민이었기에 그와는 유선상으로만 제한적으로 접촉하였으므로 실로 묘막(渺漠)했던 그와 만남이 이렇게나 빠르게 얼굴을 직접 대면하며 오랜만의 회포를 풀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동양의 군자인 공자(孔子)도 그런 기쁨을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編)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유붕(有朋) 자원방래(自遠訪來)하면 불역낙호(不亦樂呼)라?”즉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지근거리(至近距離)에 살던 벗이 찾아올 때 쉬 느끼지 못했던 원거리 방문이 얼마나 기쁜지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인 듯하다.
산업화 이후 현대인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가난의 겉옷을 벗어버리고 풍부의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불편한 삶이 편리해졌다. 일상에서 과거 봉건시대 군왕도 겪지 못한 문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첨단 과학이 빚어낸 문명의 이기를 만끽하며 상상의 세계인 우주를 넘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혜택의 이면에는 잃어버리는 것도 있다. 사람들끼리 나누어야 할 따뜻한 정이다. 부부의 정도, 천륜으로 맺어진 가족 간의 사랑도 희미해지고 있다. 오순도순 아옹다옹하던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의 전환은 주거환경에 변화를 가져와 마천루(摩天樓)처럼 높이 쌓아 올린 아파트가 등장했다. 이것은 사람의 정을 빼앗아 갔고 가까운 이웃에게 차단막이 되었다. 인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이 시대 사람을 가리켜 예수님은 “장터에 노는 아이들”에 비유하셨다.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거나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아이들 말이다(마 11:17). 작금의 우리는 연일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한다. 어느새 이웃이 아프다고 울어도 무덤덤하고 이내 자신과는 무관한 듯이 깊게 잠드는 비정한 사회가 되었다.
그런 삭막한 기운으로 만연한 때 혈육지친(血肉之親)도 아닌 교회 후배가 바다를 헤치고 산을 넘고 들녘을 지나서 여기 포항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으니 어찌 공자의 기쁨에 비할까? 광야 길에서 만난 오아시스, 쉴만한 물가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온몸에 번지는 듯했다. 예수님은 천국이 죽어서나 가는 별나라가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북쪽에서 남쪽 포항까지 불어온 훈풍은 천국을 맛보게 했다. 예수님을 믿는 당신과 내가 이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힘껏 불어야 할 바람이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아가 4:16)